정법 시론
본래 부처 아니다 공성이다
2026-01-29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나에게 묻는다면, 그건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 자기의 변치 않는 본질을 아는 것이라 답하겠다. 이를 모르는 것은 본래의 자기를 잃어버리고 사는 기억상실증 환자나 같기 때문이다. 본래의 자기 신분이 현실의 모든 고난과 한계를 너무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해왔고, 맹자와 순자의 성선설 성악설 정도는 오늘날 상식이 되었다. 과연 인간의, 나아가 모든 생명의 영원히 변치 않는 본질이란 것이 있을까? 불세존께서는 명확히 “있다” 하셨고 거기가 “모든 고통의 끝”인 자리라 하셨다.
그 본질은 공성(空性) 달리 말해서 무-자아-성, 무-개체-성, 무-한정-성이다. 그래서 실은 모두가 무경계의 우주적 동체생명으로 살고 있으며, 무한정의 자유와 능력을 갖고서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무한정성인 본래의 자기를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자기한정 지음에 따라 온갖 임시적 자기가 현실로 지어진다. 이렇게 해서 천차만별의 세상이 벌어지고, 속물도 성자도 극악한 중생도 지선한 부처도 생겨나는 것이다.
성선설・성악설과 비교하자면, 불교는 선이나 악으로 한정되어있지 않다는 뜻에서 성공설이다. 이 공성(空性)을 인격적・낙관적으로 표현한 것이 불성(佛性)이고, 진리적・중립적으로 표현한 것이 법성(法性)이며, 한정지어 써서 인과를 낳는 측면을 표현한 것이 연기(緣起)다.
불교는 일관되게 ‘본래는 중생도 부처도 아니다’고 말해왔다. 초기불교뿐만 아니라 대승불교의 금강경에서도 “중생은 중생이 아니요, 중생 아닌 것도 아니다.” 하셨다. 대승 화엄경에서도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에는 차별이 없다. [부처 중생 등] 일체는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다.” 하셨다. 화엄종의 오조 규봉종밀 대사는 “이 마음은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비록 온갖 것이 아니나 온갖 것의 근본이 된다.” 하셨다. 대승 법화경에 의거하는 천태교에서도 "생명의 본성에는 더럽고 깨끗하고 선하고 악한 모든 가능성이 본래 갖추어져 있다." 하셨다. 부법장인연전에서도 “본성에는 [선이나 악으로] 결정된 것이 없다. 물들이고 익히는 바에 따라 선업도 일으키고 악업도 일으킨다.” 하셨다.
언제부턴지 우리 불교계에는 ‘본래 부처다’는 말이 널리 퍼져있어서 불자들에게 오해와 혼란을 주고 있다. 이 말의 출처는 주로 선불교인데, “밖으로만 부처를 찾고 자기의 법성이 세 부처를 가졌음은 보지 못한다. 자기의 [법신・보신・화신] 세 부처를 보게 하리라.”와 같이 설법한 것은 특정한 병통을 치유하기 위해 방편으로 쓴 표현이었다.
오해나 혼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설법을 들을 때 방편인지 진실인지 잘 구분해 들어야 하고, 또한 부처와 불성이 다른 뜻임을 알아야 한다. 대승 열반경에서 “불성이 곧 부처는 아니다. 불성을 깨쳐야 부처가 된다.”고 하셨다. 선불교의 육조 조계혜능 대사도 “앞생각이 미혹하면 바로 범부요, 뒷생각이 깨달으면 바로 부처다.” 하셨다.
거듭 말하건대 본래의 자기가 공성(空性) 무-한정-성이기 때문에, 자유의지와 행위로 자기를 한정지어 구체화하는데 따라 속물・성자 중생・부처 등 온갖 임시적 자기가 현실로 지어지는 것이다. ‘본래의 자기’와 ‘현실의 자기’를 이렇게 한 원리로 꿰뚫어 알아서, 가능성과 현실상을 똑같은 무게로 인정하고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 이것이 자기를 바로 보고 세상을 바로 보는 정견(正見)이다. 불교는 궁극의 진리인 이 중(中)의 도(道)를 바르게 깨쳐서 설파하는 가르침이다.
불변의 자기 본질 즉 본래의 자기가 ‘공성’임을 바르게 알 때, 행복과 불행 등 모든 현실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행위’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기에 불세존께서는 “행위에 의해 성자가 되고,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제왕이 된다.” 하신 것이다. 또한 “나는 업을 말하는 사람이고, 행위를 말하는 사람이고, 정진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단적으로 반복하여 천명하심으로써 불교의 핵심 결론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것이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를 진정으로 아는 거야말로 인생이 무엇인지 알고서 사는 것이며, 인생을 참으로 사는 것이며, 인생을 진실로 가치있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이 글과 같은 이유로,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이란 표현에도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이다.)
2569(2025)년 비구 불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