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불교

파라미따선림

수행도량

정법 시론

완벽한 제사보다 뛰어난 것

2026-08-09


  백중(白衆)은 스님들이 우기 세 달 동안의 안거(安居) 집중정진을 마치면서 자자(自恣), 그동안 자기가 모르고 지은 허물들이 있으면, 참회하여 맑힐 수 있도록 알려달라고 대중께 청하는 의식을 다 같이 행함으로써, 승가가 일 년 중 가장 청정해지는 때를 의미한다. 그 최상의 복전(福田)에 음식과 가사 등 생필품을 공양함으로써 크나큰 복덕을 짓게 되는, 재가의 축제처럼 열린 것이 본래의 백중 법회였다.

  이후 이타(利他)를 자리(自利)로 삼는 보살(보디삿따)이야말로 이상적 인간상이며 보살의 바라밀(파라미따)행이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라고 천명하는 대승운동이 일어났고, 이러한 대승불교가 효()를 특히 중시하는 유교 문화권에 전해지면서 우란분경 부모은중경 등이 편찬 저술됨에 따라, 백중 법회는 이때 짓는 큰 공덕을 돌아가신 부모 조상께 회향(廻向)하여 자손 된 도리를 행하는 법회로 변모하게 되었다.

 

  최근 삼사십 년 사이에 한국불교는 수행이 아닌 제례 중심의 종교로 빠르게 변질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백중 법회에서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승가에 공양하는 수행은 퇴색되고 조상 천도를 위한 제례만 강화되어, 법회를 사십구재처럼 하는 모습이다. 불교가 수행이 아닌 제례로 변질되어서 바라문교(힌두교)처럼 될 때 결과가 어떤지는, 청나라 말기의 중국불교와 현재의 일본불교가 잘 보여준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여러 경들에서 완전무결한 제사보다 훨씬 뛰어난 이익을 주는 것이 수행이라 하셨다.

 

 

천 개씩의 갖가지 [공양물]로 다달이 백 년 동안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잠시라도 한 사람 [참된] 수행자에게 [깨끗한 믿음으로 한 숟갈의 음식을] 공양하면, 그 한 번의 공양이 백 년의 제사보다 낫다.” “복을 짓기 위해 일 년 동안 계속 제사지내며 어떠한 공양물을 바치더라도, 바른길을 가는 수행자에게 [깨끗한 믿음으로 잠시라도] 예경하면, 그 한 번의 예경이 일 년 동안의 제사보다 훨씬 낫다.” 법구경 8:7,9

 

바라문 자눗소니가 세존께 우리 바라문들은 이 보시가 혈육친지이신 영령들께 공덕이 되기를하고 염원하면서 제사를 지냅니다. 이런 보시가 [실제로] 공덕이 되겠습니까?”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죽은 뒤 지옥계나 축생계나 인간계나 천상계에 태어났다면, 거기 머무는 자에게는 그 보시가 공덕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귀계에 태어났다면 그 보시는 공덕이 된다. [귀들이 사는 곳에는 농사도 목축도 장사도 없어서] 혈육이나 친지가 여기서 보시하여 공급해준 것으로 거기서 연명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존자시여, 만일 [제사에서 청하여 부른] 혈육친지인 그 영령들이 아귀로 있지 않으면 누가 그 보시를 즐깁니까?” “바라문이여, 아귀계에 태어난 혈육친지인 다른 영령들이 그 보시를 즐긴다.”라고 말씀하셨다. 증지부10:177 자눗소니 경

 

왕국을 위한 큰 제사를 준비하고 있던 노령의 바라문 꾸따단따가 세존을 찾아뵙고 ‘[완전무결한] 제사를 위한 세 가지 측면의 열여섯 가지 필수조건들에 대해 여쭈어 긴 말씀을 듣고 나서 질문하기를 이보다 덜 번거롭고 덜 어려우면서도 더 많은 보과와 이익을 주는 다른 제사가 있습니까?”라고 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런 제사가 있소. 계행을 갖춘 출가수행자들을 위해서 보시하는 것이 더 많은 보과와 이익을 주는 제사이오. 사방의 승가를 위해 승원을 짓는 것이 더 많은 보과와 이익을 주는 제사이오.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삼보에 귀의하는 것이 더 많은 보과와 이익을 주는 제사이오.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오계를 받아 지니는 것이 더 많은 보과와 이익을 주는 제사이오. 더 높은 계행과 선정과 지혜를 닦아 구족하여 머무는 것이 더 많은 보과와 이익을 주는 제사이오. 이러한 제사의 성과보다 뛰어난 다른 제사는 없소. 왜냐하면 이런 제사에는 아라한들 [바른 길을 가는 위대한 선인들]이 참으로 기뻐하며 다가가서 함께하기 때문이오.”라고 하셨다. 장부5 꾸따단따 경

 

원적(圓寂)이 가까웠을 때 부처님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한 쌍의 살라 나무 사이에 북쪽으로 머리를 둔 누울 자리를 만들게 한 뒤 사자처럼 누우셨다. 잠시 후 말씀하시기를 아난다여, “[큰 위력을 지닌 수없이 많은 천신들이 여래에게 경배하기 위해 공양 올린] 천상의 꽃들과 향 가루와 음악이 허공에서 흩날리고 울려 퍼지는구나. 그러나 이런 것은 여래를 참으로 공경하고 숭상하고 경배하는 것이 아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고통의 끝인] 열반에 이르는 방법을 닦고 합당하게 닦아 [열반을, 즉 성스러운 진리생명인 본래의 자기를 되찾아서] 머무는 것이 진정 최고로 여래를 공경하고 숭상하고 경배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장부16 대반열반경5:3

 

 

  인도 바라문교의 제사는 천지의 신명신령들께 음식 등을 헌공하면서 더불어 혈육친지인 영령들께도 공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참석한 사제들을 비롯한 대중들에게 제사를 마치면서 그 공양물을 보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통적 인식으로는 제사와 보시가 합쳐진 모습이라 하겠다. 그러함에도 부처님께서는 제사 공덕보다 일상 속에서 지혜롭게 보시하고 수행하는 공덕이 훨씬 크다고 하셨다.

  불교계는 출가대중이 사법(邪法)을 행하든 정법(正法)을 행하든, 재가대중이 '호응'하는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재가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라도 변질되지 않은 순수한 불교를, 정법을 행해야 한다. 제례 의식을 과신하여 백중의 천도 기도를 사십구재처럼 하는 것은 재가에도 불교에도 해로운 어리석은 집착이다. 백중기도는 길어도 칠 일을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례 의식에 들이는 정성과 비용을 일상의 지혜로운 보시 수행으로 돌리면 천 배 만 배 큰 결실을 거둔다는 것이, 그 큰 공덕을 이승이나 저승에서 고통받고 있는 혈육 친지 이웃과 나누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2570(2026)년 백중을 맞이하여

비구 불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