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문 과정
기초신행 제3강 - 행복 위한 귀의심 기르기
2026-01-29행복 위한 귀의심 기르기
1. 참된 귀의처가 될 수 있는 이유
◉ 중생이 삼보에 귀의하는 원인 : 가장 주된 원인은 두려움이다. 머지않아서 죽게 되면 업력에 의해 환생할 것인데, 쌓은 선업은 미력하고 악업은 강력하여 악도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이 두려움에서 자기를 ‘구제할 능력’이 있는 귀의처를 찾게 되는 것이다.
◉ 삼보를 참된 귀의처로 삼는 이유
◾ 부처님은 자력으로 두려움 없는 지위를 성취하셨기 때문.
◾ 부처님은 중생을 구제하는 모든 방편에 뛰어나시기 때문.
◾ 부처님은 친소가 없는 대자대비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
◾ 부처님은 재물 공양이 아닌 정행(正行) 공양을 기뻐하시기 때문.
◾ 위의 덕들은 부처님께만 있고 다른 천신들에게는 없기 때문.
◾ 법보와 승보는 이러한 부처님의 교설 교계로 생겨났기 때문.
◉ 구제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 : 외적 조건 곧 타력(他力)은 부처님께서 이미 부족함 없이 모두 이루어놓으셨다. [어미가 하나뿐인 자녀를 목숨 바쳐 보호하듯이] 청하지 않아도 일체 중생의 [어버이가 되고] 좋은 벗이 되어 도움을 주시며 그러한 이타행에 나태함이 없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귀의처가 자신의 수호자로 계신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깨달아서 자기 마음을 온전히 맡겨 귀의처로 삼는 내적 조건, 곧 자력(自力)을 갖추어야 악도의 두려움에서 비로소 구제될 수 있다.
2. 바르게 알아서 바르게 귀의하기
◉ 삼보의 공덕을 바르게 안다
◾ 불보의 공덕 : ① 부처님의 ‘지혜’는 마치 손바닥 위에 수정을 올려놓은 것처럼, 알아야 할 모든 대상의 사리를 걸림 없이 훤히 아시기에 그 지혜가 모든 대상에 두루 미친다고, 그 지혜의 덕을 바르게 안다. ② 부처님의 ‘자비’는 마치 중생들이 번뇌에 꼼짝없이 묶여 있듯이 부처님께서도 동체대비의 마음에 꼼짝없이 묶여있어,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시면 한량없는 대비심이 일어난다고, 그 자비의 덕을 바르게 안다. ③ 부처님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위력’을 이미 갖추고 계시기 때문에, 중생 스스로 마음을 닦을 준비가 된 근기라면 그를 구제하시지 않음이 없다고, 그 위력의 덕을 바르게 안다.
◾ 법보의 공덕 : 무량한 공덕을 지닌 부처라는 존재의 성취는 교법(敎法)과 증법(證法)에서 생기는 것이다. 즉 교법을 듣고 사유하여 공덕을 이루는 행을 닦아서 허물을 여읜 열반을 증득한 증법에 의해 성불하는 것이다. 따라서 법에 그러한 공덕이 있음을 바르게 안다.
◾ 승보의 공덕 : [귀의처로서의] 승가란 법을 생각하고 법을 말하고 법을 행하는 이들이며, 항상 법에 머무르고 항상 [모든 탐욕과 차별을 떠난] 고요를 즐기고 항상 선을 행하는 이들이며, 성품이 진실하고 청정하며 큰 연민심을 지닌, 성자승들이 그 중심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법을 여법하게 행하는 데에서 이렇게 크나큰 공덕이 생김을 바르게 안다.
◉ 삼보 각각의 차이점을 안다
◾ 본질적 차이 : 불보는 [생사고락과 우주만유의 진리에 대한] 완전한 깨침이 본질이고, 법보는 그 결과로서의 가르침이며, 승보는 그 가르침에 의지하여 깨침을 바르게 성취하는 존재이다.
◾ 역할의 차이 : 불보는 최적의 가르침을 내리시고, 법보는 미혹과 고통을 끊게 하며, 승보는 [깨침을 바르게 성취하여 불보의 깨침이 진리임을 증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환희심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 인정의 차이 : 불보를 마땅히 공경하고 공양해야 할 존재로서 귀하게 인정하고, 법보를 마땅히 수행하여 증득할 바로서 귀하게 인정하고, 승보를 마땅히 여법하게 외호하며 동행해야 할 존재로서 귀하게 인정한다.
◉ 삼보를 귀의처로 받아들인다
◾ 부처님은 교조라는 귀의처로 받아들이고, 법은 열반[의 더없는 행복]을 이루어주는 ‘참된’ 귀의처로 받아들이고, 승보는 신행・수행 공덕의 조력자라는 귀의처로 받아들여서 귀의를 맹세하는 것이다.
◾ 불교와 타종교의 교조・교법・교도 각각의 차이점과 그 우열을 알아서 오직 삼보만을 귀의처로 인정하며, 불교에 반하는 타종교의 교조・교법・교도를 귀의처로 여기지 않음이 바르게 귀의하는 것이다.
3. 귀의한 이후에 실천해야 할 것
◉ 삼보의 공덕을 계속 사유한다 : 사유를 닦아 익히는 수행을 ‘분별’이라 여겨서 버리는 것은 수행의 크나큰 장애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삼보의 공덕을 계속 사유하여 마음속 깊이 삼보를 향한 ‘참된 믿음’이 생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믿음이 없으면 바른 깨침은 차치하고 ‘참된 귀의’조차 불가능하다. 삼보의 공덕을 사유하고 익혀서 삼보를 깊이 이해하게 되면, 그제야 경론을 진정한 가르침으로 특별하게 받아들이게 되어서, 업장이 정화되고 한없는 복을 짓고 진리를 속히 얻게 되는 것이다.
◉ 선지식으로부터 전승된 가르침
◾ 귀의하는 큰 공덕을 알아서 밤낮으로 매일 세 번씩 삼보께 귀의한다.
◾ 매우 비옥한 밭이 있는데 봄에 씨 뿌리지 않고 그냥 버려둘 수 없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삼보의 은혜를 떠올려 공경・재물・수희 공양과 중생을 해치지 않는 정행(正行) 공양에 항상 노력한다. - 지혜의 힘이 미약할 때는 복전의 위력에 의지하는 것도 하나의 방책이다.
◾ 자비심으로 다른 중생도 삼보께 귀의하도록 이끈다.
◾ 삼보를 비방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어떤 목적이 생겼을 때는 반드시 먼저 삼보께 마음을 의탁하여 공양 올리며 발원과 기도를 행하고, 부적절한 세속의 방편에 의탁하지 않는다.
◾ 부처님 형상을 부처님처럼 공경하고, 경전이나 경구를 법보와 같이 공경하고, [참회 불가한 큰 파계가 없고 작은 범계에도 수치를 느끼는] 출가수행자를 승보와 같이 공경한다.
◾ 작게는 농담으로라도, 크게는 목숨을 잃을지라도 삼보를 버리지 않는 다. 재물과 육신과 목숨은 언젠가 반드시 없어지는 것인데 그런 것들을 위해 삼보 [곧 진리]를 버린다면 끝없는 윤회의 고통이 생기기 때문이다.
◉ 참된 귀의처는 법보(法寶)이다
◾ 불보는 윤회의 고통 끊는 길을 [처음으로] 보여주신 귀의처이고, 승보는 그 길을 바르게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귀의처이고, 법보 [곧 진리]는 우리를 실제로 구제하는 ‘참된’ 귀의처이다. 진리를 얻으면 두려움에서 반드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 불세존의 유훈 “자기를 피난처・귀의처로 삼고 진리를 피난처・귀의처로 삼아라.”
◾ 대승의 무착 보살은 논서에서 “다섯 감각과 생각이 들뜨지 않도록 함, 계율을 바르게 받아지님, 중생에게 자비심을 가짐, 때마다 삼보 공양에 노력함, 이 네 가지 바른 행을 성취하면 비로소 [참된] 귀의라 이름한다. … 참사람을 가까이하여 섬김, 정법을 많이 배워서 고찰함, 진리에 맞게 주의를 기울임, 열반에 이르는 행법을 닦음, 이 네 가지 바른 행을 성취하면 비로소 [참된] 귀의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 궁극적인 법보는 선악과 그 과보를 바르게 알고 실천해서 성취하는, [미혹을] 단(斷)한 공덕과 [진리를] 증(證)한 공덕이다. 우리를 두려움으로부터 실제로 구제하는 법보의 이 큰 공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일체 행복의 근원인 ‘삼세인과에 대한 믿음’을 먼저 일으킬 수 있어야만 한다.
2569(2025)년 비구 불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