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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신행 제1강 - 사람 된 기회를 가치있게

2026-01-29


사람 된 기회를 가치있게 



1. 사람 된 기회의 뛰어난 가치 알기


◉ 선(善)을 행할 수 없는 상황 여덟 가지 

 ◾ 사람이 아닌 네 가지 상황 : ① 지옥중생으로 태어나거나 ② 축생으로 태어나거나 ③ 아귀나 아수라로 태어나거나 ④ 천신으로 태어나면, 고통 또는 희락에 빠져서 세간・출세간의 선을 행할 수 없다.

 ◾ 사람이 처한 네 가지 상황 : ① 불세존의 진리의 말씀이 없는 시대에 태어나거나 ② 사부대중의 왕래가 없는 미개한 지역에 태어나거나 ③ 지적활동에 장애가 되는 신체결함을 갖고 태어나거나 ④ 삼세인과와 삼보가 없다고 믿는 삿된 견해를 갖고 있으면, 선을 행할 수 없다.


◉ 선(善)을 행할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 

 ◾ 필요조건 다섯 가지 : ① 사람으로 태어나고 ② 사부대중의 왕래가 있는 개명된 지역에 태어나고 ③ 감각하고 생각하는 정신기능을 온전히 갖춰서 태어나고 ④ [성스러운 도과(道果)를 이룰 수 없게 되는] 극악한 업을 스스로도 남을 시켜서도 짓지 않고 ⑤ 세간・출세간의 모든 선이 생기게 하는 경‧율‧론 삼장(三藏)을 바르게 믿으면, 참된 선을 행할 수 있다.

 ◾ 충분조건 다섯 가지 : ① 불세존이 출현하고 ② 불세존 또는 직계의 성스러운 제자들이 진리를 설하고 ③ 불세존의 재세 동안 성스러운 도과의 증득들을 통해 [‘진리의 교법’과 ‘진실한 수행’과 ‘도과의 증득’, 이 세 가지] 정법(正法)이 기울지 않은 채 존속하고 ④ 도과 증득의 증명을 통해, 인간에게 진리를 증득할 능력이 있음을 알아서 정법을 따라 수행하는 이들이 있고 ⑤ 수행에 전념토록 생필품을 보시하는 후원자들의 이타심이 있으면, 세간과 출세간의 모든 선을 충분히 행할 수 있다.


◉ 사람 몸이 갖는 뛰어난 가치 사유하기 

 ◾ 살아 있는 동안 행복을 구하고 고통을 없애는 정도의 노력은 짐승들도 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생의 행복과 궁극의 행복을 위한 선(善)과 청정(淸淨)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선취의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삶의 내용과 결과는 악도의 중생과 다를 바 없다. 

 ◾ 선을 행할 수 없는 여덟 가지 상황에서 다행히 벗어나 있고, 선을 행할 수 있는 필요조건 다섯 가지를 복되게 갖추었다면, 참된 자기의 성스러운 지복을 처음 이룰 수 있는 더할 수 없이 좋은 기회다. 이 소중한 기회를 헛되이 한다면 자기를 저버리는 것이니,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는 보물섬에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옴과 같은 것. 그러니 ‘자유가 있고 조건이 갖추어진 이때, 이 기회를 잡지 않는다면 악도에 떨어질 터, 거기서 누가 나를 건져주겠는가!’라고 사유해야 한다.



2. 큰 기회를 살리기 위해 발원하기


◉ 사람 몸을 다시 얻기 어려움 사유하기 

 ◾ 율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악도에서 죽어 다시 악도에 태어나는 것은 대지의 티끌 수와 같고, 악도에서 죽어 선취에 태어나는 것은 손톱 끝으로 긁어모은 티끌 수와 같으며, 천상과 인간 이 두 선취에서 죽어 악도로 가는 것은 대지의 티끌 수와 같고, 이 두 선취에서 죽어 다시 선취에 태어나는 것은 손톱 끝에 있는 티끌 수와 같다.”고 하셨다.

 ◾ 사람 몸이 그토록 얻기 어려운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승불교 논서와 주석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르지 못한 마음[인 열 가지 악]에 계속 머무네. 그래서 범부들은 대부분 결국 악도로 나아간다네.”라고 하셨다. 그러니 과거 생에 지은 악업뿐 아니라 이번 생에 지은 악업으로 인해서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 악업 과보로 악도의 고통을 겪고 나면 이전 악업들이 소멸되어 다시 선취에 태어날 수 있기에, 악도에서 벗어남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고통을 겪는 중에도 매순간 ‘그 고통을 받느라 마음을 거칠고 무겁고 어둡게 물들이는’ 악업을 짓기 때문에 악도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불세존께서 “눈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씩 바다 위로 떠올라 바람 따라 떠밀려 다니는 한 개 멍에의 구멍으로 요행히 목을 넣는 것이, 한번 악도에 떨어진 우매한 자가 인간의 몸을 다시 받는 것보다 빠르다고 나는 말한다. 악도에는 법다우며 덕스러운 행위가 없고 약육강식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 네 가지를 바르게 사유하여 발원하기

 ◾ 대승 논서에서 “가령 수감자가 감옥에서 도망칠 기회가 생겼을 때, 중요하던 어떤 것도 개의치 않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도망치듯이, 이 윤회의 큰 바다에서 건너갈 기회가 생긴다면, 중요하던 어떤 것도 개의치 않고 곧바로 윤회의 바다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이 더없이 좋은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다음 네 가지를 바르게 사유하여 발원해야 한다. ① 세간・출세간의 모든 선이 생기게 하는 ‘정법 [곧 진리의 말씀과 진실한 수행]을 실천해야 한다!’ 중생은 모두가 오직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원치 않는데, 이는 정법의 실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② ‘정법 [곧 진실한 수행과 도과의 증득]을 성취할 수 있다!’ 내적 조건인 잠재력과 외적 조건인 선지식을 지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③ ‘이번 생에 이뤄야 한다!’ 만약 이번 생에 이루지 못하면 사람 몸을 다시 받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④ ‘바로 지금 이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3. 세 근기의 길을 통해 순차적으로


◉ 모두와 함께 최상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불교

 ◾ 행복의 네 차원 : ① 범부들의 ‘내생에는 크게 괴롭지만 지금은 즐거운’ 일시적인 행복, ② 범부들의 ‘지금은 괴롭거나 즐겁지만 내생에는 크게 즐거운’ 일시적인 행복, ③ 성자들의 ‘윤회하는 고통에서 해탈했거나 해탈할 것이 확정된’ 궁극적인 행복, ④ 불세존의 ‘무상정각과 무량복덕과 대자대비와 대위신력을 갖춘’ 최상의 궁극적인 행복.

 ◾ 중생 근기의 네 차원 : ① 삼세인과와 육도윤회를 믿지 않아 현생만의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최하-근기 중생, ② 현생의 안락보다 내생의 더 큰 자기 행복을 우선해 추구하는 하-근기 중생, ③ 윤회의 고통에서 해탈한 자기 행복을 추구하는 중-근기 중생, ④ 큰 자비심으로 자기를 헌신하여 남들의 고통 영멸을 추구하는 상-근기 중생.

 ◾ 불세존께서는 “[방일하거나 나태하여서 자신의] 고통을 더디게 끊는 것은 하천하다. [남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자기 일신만의] 고통을 빨리 끊는 것 또한 하천하다고 나는 말한다.” 하셨다. 이렇게 불교는 ‘남들에게 이롭게 함을 자신의 이로움으로 삼는’ 상-근기의 고귀한 삶을 통해서 모든 생명과 함께 최상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종교이다. 


◉ 불교의 모든 가르침은 세 근기의 길로 수렴함 

 ◾ 불교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모든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대비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불행과 고통의 윤회계를 떠도는 것을 생각할 때,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끔찍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감정 동요가 없는 자에게, 윤회 속에서 겪는 중생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는 연민의 마음이 생기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근기의 길에서 ‘자신에게 악도(惡道)의 불행과 고통이 발생하는 이치’를 철저하게 숙고해 깨우치고, 중근기의 길에서 ‘선취(善趣)라 해도 고통이 있을 뿐더러 열반의 참된 행복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한다. 그런 다음 자신의 수행경험을 바탕으로 윤회 속 중생의 고통을 관찰하게 되면, 중생을 향한 연민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하근기의 길과 중근기의 길로 말미암아 대비심이 생기게 되고, 나아가 [일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무상정각을 이루려는 마음인] 보리심을 일으키게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하근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중근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둘 다 대비심과 보리심을 일깨우는 과정이어서, 상근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과 무관한 길이 아니다.

 ◾ 이런 이유로 대승불교 마명 보살께서 “해치지 않고, 주는 것만 받고, 청정하게 지내며, 거짓 없이 말하고, 가진 것을 베푸는 것이 ‘[하근기의] 선취 행’이다. 윤회의 고통을 보면서 진실하게 수행하여 [미혹과 행업, 이] 두 가지 죄를 끊는 것이 ‘[중근기의] 적멸 행’이다. 이 둘 또한 취할 바이며 가장 뛰어난 길의 일부분이다. 모든 존재의 공성(空性)을 깨침으로써 중생에게 [동체]자비심이 샘솟아서 가없는 방편의 보살행 [즉 파라미따 대행]을 다하는 것이 ‘[상근기의] 최상 행’이다.” 하셨다.


◉ 세 근기의 길을 통해 순차적으로 이끄는 이유

 ◾ 혹여, 하근기가 위 차원의 길부터 닦더라도 위 차원의 목표를 추구하는 마음이 생길 수 없다. 왜냐하면 바탕이 되는 아래 차원의 수행이 없으면 위 차원의 수행도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 반대로, 위 차원의 길에 자질이 있는 이가 아래 차원의 ‘공통’되는 길을 닦으면, 아래 차원의 수행을 빨리 성취해 공덕이 생기게 된다. 아래 차원 수행의 성취공덕이 생기면 곧바로 위 차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으므로, 자기 근기의 길과 멀어지지 않는다. 

 ◾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하는데 있어 하-근기의 길에서 시작해 중-근기의 길, 상-근기의 길로 나아가는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확신을 갖고서 순서에 맞게 착실히 정법을 실천해나가야 한다.


2569(2025)년  비구 불퇴